아랍에미리트(UAE)를 산유국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텐데, 매장량 기준으로 세계 6위 산유국이 맞지만 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기준, 24% 수준까지 낮아졌습니다.
비석유 부문이 전체 GDP의 75.5%를 차지하면서, 2009년까지만 해도 85% 이상이던 석유 의존도에서 빠르게 탈피했습니다. UAE 정부는 장기적으로 세 단계에 걸친 국가 비전을 수립했고 2071년까지 지식 기반 경제로의 이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UAE는 항공, 물류, 재생에너지 등 다양한 비석유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해왔죠. 항공산업에서는 에미레이트 항공이 2024~2025년 회계연도 기준 5,370만 명의 승객을 수송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서비스 품질을 유지하고 있고, 세후 순이익은 약 22억 디르함(현재 환율로 8,175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에티하드 항공 역시 2024년 실적 회복세를 보이며 17억 디르함 규모의 순이익을 달성했죠.
물류 분야의 대표 기업인 DP World는 2024년 전 세계 40개국에서 78개 터미널을 운영하며 총 8,830만 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했습니다. 제벨알리항만 하나에서만 1,550만 TEU를 기록했고, 전체 연 매출은 200억 달러에 달합니다.
재생에너지 전환의 상징인 마스다르 시티는 2008년 착공 이후 현재 약 1만 5천 명이 생활하고 있는데, 1,000개 이상의 기업이 입주해 있습니다. 지멘스 중동 본부, UAE 우주청, G42, MBZUAI 등 다양한 기술 기관이 모여 있죠. 건물 에너지 소비는 기존 대비 40% 이상 절감되었고, 거리 온도는 주변 사막보다 5~10도 낮게 유지됩니다. 도시 전력은 87,000개 이상의 태양광 패널에서 공급되고 있죠.
교육과 과학기술
UAE는 글로벌 인재 유치를 위해 교육 인프라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습니다. 뉴욕대학교 아부다비 캠퍼스에는 현재 120개국 출신 2,000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 중이고, 중동 최초로 로즈 장학생 24명을 배출했죠. 2006년 개교한 소르본 아부다비는 프랑스어, 영어, 아랍어로 수업을 제공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학생들이 모여 있습니다.
2021년 개교한 MBZUAI(모하메드 빈 자이드 AI 대학교)는 세계 최초의 AI 대학원 중심 교육기관으로, 첫 졸업생의 91%가
UAE 내에 정착할 정도로 현지 연구 인프라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학부과정도 신설되고, AI 관련 클러스터가 더욱 확대될 예정입니다.
우주 분야에서는 2020년 7월 19일 발사된 화성 탐사선 ‘Hope’가 2021년 2월 9일 궤도 진입에 성공했습니다. 아랍권 최초이자 세계 다섯 번째 화성 탐사선 궤도 진입 사례였죠.
한국과 방산업 협력
UAE는 우리나라와의 방위산업 협력을 통해 기술 자립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2022년 UAE는 약 35억 달러 규모의 중거리 지대공 미사일 천궁-2 시스템 도입 계약을 체결했죠. 당시로서 한국 방산 수출 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이어 2023년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UAE가 다목적 수송기 공동개발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당초 일본의 C-2 수송기 도입을 검토했지만, 기술 이전 거부로 한국과의 협력을 선택한 점은 UAE가 단순 구매가 아니라 기술 획득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외에도 LIG넥스원과 현대중공업은 UAE 방산기업들과 각각 첨단 무기체계, 군용함 개발을 위한 협력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K2 전차 사막형, 장거리 지대공 미사일(L-SAM) 등의 수출 가능성도 거론되며 양국 간 포괄적 방산 협력 체계가 구축되고 있죠.
그 기반에는 2009년 바라카 원전 수주가 있습니다. UAE는 당시 한국전력의 APR-1400 원전 4기를 204억 달러에 발주했고, 이후 아크부대 파병과 군사 협력을 기반으로 방산 협력 관계를 확대해오고 있습니다.
국부펀드와 금융 전략
UAE는 석유 수익을 국부펀드를 통해 전략적으로 운용하고 있습니다. 아부다비투자청(ADIA)은 2024년 기준 약 1조 570억 달러 규모의 운용자산(AUM)을 보유하고 있는데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국부펀드죠. 최근에는 글로벌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두바이 국제금융센터(DIFC)는 2024년 기준 6,920개 이상의 활성 기업과 7,000억 달러 규모의 운용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글로벌 금융센터 지수(GFCI)에서 세계 12위를 차지했습니다. 아부다비 글로벌 마켓(ADGM)도 중동 내 2위의 금융 허브로 성장 중이고 조세 우대를 통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고 있죠.
두바이: 탈석유 전환의 최전선
아랍에미리트 전체가 탈석유 전략을 수립해가는 가운데, 두바이는 이를 실험하고 구현하는 선도 도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두바이는 스스로를 ‘석유 없는 도시’로 정의하며 자본, 관광, 기술의 쇼윈도 역할을 자처해왔죠.
현재 두바이의 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이고, 탈석유 경제 구조가 사실상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많죠.
두바이는 자유무역지대를 중심으로 100% 외국인 지분 허용, 법인세·소득세 면제, 영미법 기반의 독립 사법제도를 구축하며 글로벌 자본과 기업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HSBC, 도이치은행, 시티그룹은 물론 구글, 메타 등 IT 대기업도 중동 허브로 두바이를 선택했죠.
관광 산업 성장도 괄목할 수준인데 2022년 외국인 숙박 관광객 수는 1,436만 명으로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두바이는 3년 연속 글로벌 인기 여행지 1위에 선정되었죠.
물론, 구조적인 한계도 있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UAE 전체 인구 약 1,030만 명 중 88.1%가 외국인이고, 두바이는 92%에 달합니다. 이들은 주로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출신으로, 건설·서비스·운송·청소 분야에 집중되어 있죠.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두바이는 부동산 버블 붕괴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부다비가 2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두바이는 심각한 재정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죠. 부동산의 불안정성도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UAE는 2024년 GDP 성장률 4.0%, 비석유 부문 성장률 4.6%, 인플레이션 1.7%, 경상수지 흑자 10.7%를 기록했습니다.
비석유 부문 확대, 한국과 방산 협력, 교육 및 기술 인프라에 대한 집중 투자, 국부펀드의 운용 역량 등은 탈석유 전환이 현실의 성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죠.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옴 시티 같은 허황된 계획보다는 아랍에미리트의 탈석유 전략이 실속 있고 체계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주 기술과 AI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려가는 걸 보면 좀 부러운 마음도 드는데, 우리나라도 이제 부동산 올인은 졸업하고 미래 산업에 집중 투자를 할 때가 아닌가 싶네요.